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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아플 때와 부모가 편찮으실 때를 저울질 할 수 있을까요? '내리사랑' 이라는 말로 무게 추가 흔들린다고 하면 잘못된 것일까요? 가족 중 한 명이 말기 환자가 되었을 때, 대부분의 가족은 감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병이라는 무거운 책임 또는 의무를 떠안게 됩니다. 처음엔 ‘가족이니까 당연히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간병은 단순한 의무감이나 책임감만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현실은 더 복잡하고 더 무겁습니다. 돈, 시간, 감정, 인간관계, 그리고 나 자신에게의 질문을 포함한 이 감내의 과정은, 말 그대로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은 말기 환자를 간병 중인 가족의 입장에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범위에 대한 것입니다.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일지, 역시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가능한한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돈 : 질병으로부터 버티기 위해 필수
대학병원과 암 전문 요양원을 거쳐 오랜 기간 투병과 간병을 하다 보면 질병 자체도 두렵지만 치료에 드는 지속적인 비용 부담이 가중됩니다. 수술비, 입원비, 식대, 간병비, 교통비, 각종 검사비, 기타 경비 등은 병원비 청구서를 받아보는 순간 현실이 됩니다. 의료보험이 있다 해도 비급여 항목이 포함되면 비용은 수직 상승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수개월, 수년 반복되면 어지간한 개인 저축은 다 무너지고 게다가 간병 때문에 정규직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나 파트타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본인의 경우, 불행 중 다행스럽게 당사자의 보험과 다소 간의 보유 현금으로 수술비 등 일체를 충당했지만, 통원 치료 5년 후 완치 판정을 받고도 이후 재발하여 추가 항암 치료를 위해 암 전문 요양원에 머물게 되어 또다시 목돈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동안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한 환자의 치료비와 요양비는 형제 간에 분담하여 각 가정의 부담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형제자매가 없는 독자라면 두 부모의 병수발과 치료 비용까지 홀로 짊어지게 될 것이기에 생각만 해도 암담합니다. 이미 충당 가능한 부를 이룬 집안이면 감내할 수 있겠으나, 평범한 가정의 수준이라면 결코 쉽게 메꿀 수 있는 비용은 아닙니다. 질병은 돈과의 싸움입니다. 사랑만으로는 절대 버틸 수 없습니다.
시간 : 하루의 전부를 내어주는 삶
현재 평일은 각 형제가 본인의 직장을 유지하고 간병인과 계약(고용)하여 24시간 간병 지원을 받고 있으며, 주말은 형제 간에 순번을 정해 월 1.5회 가량 직접 간병을 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의 주말 기준으로 하루 일과(24시간)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보통 2시간 이내 간격으로 간호사의 주기적인 환자 체크 (새벽 시간대 포함), 10분 ~ 15분 이상 환자 혼자 두지 않도록 간병인 상주 (간이의자 겸 침상 제공),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속적인 관리 및 대소변 처리, 다인실의 경우, 주변 환자가 섬망 증세가 있는 등의 특이사항 발생 가능, 24시간 중 온전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딱히 무언가를 하진 않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찬찬히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학병원의 외래 진료 기준으로 본다면, 새벽에 일어나 지방에서 서울 병원으로 이동하고, 그 날은 하루를 온전히 병원에서 보내야 합니다. 병원 내에서 휠체어 이동, 장시간 면담 대기, 짧은 면담, 약 수령, 다음 일정 확인, 보험 청구 준비까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갑니다. 간병은 단지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통째로 환자에게 드리는 일입니다.
감정 소모 : 가족 간의 갈등, 숨겨진 감정의 전쟁
간병 중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함께 부모를 둔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입니다. 부모가 아플 때 모두가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그런 경우는 아니었으나, 지속되는 병치레와 비용 지출은 병원비 분담, 치료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 환자 돌봄 방식에 대한 불만 등이 쌓이며 감정의 골은 시나브로 깊어질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우애가 깊은 가족 들도 있겠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 는 옛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닐 것입니다. 간병은 단지 육체적인 피로를 넘어, 관계와 감정의 총체적인 혼란을 겪게 만듭니다. 특히 간병자가 한 명으로 고정되면, 감정은 점점 고립되고 쌓이기 마련입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기대했던 관계는, 간병을 통해 오히려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환자 케어 농도 : 존엄을 지키는 돌봄의 균형
간병은 단지 ‘잘 돌봐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너무 많은 돌봄이 환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환자께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 후,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본인의 처지를 어떻게 받아 들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라면 그러지 않고 당당하게 '내가 널 보살핀 것처럼 너도 나를 돌봐라.' 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자식의 알몸을 관리하는 것과 자식이 부모의 수발을 드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몸을 움직일 수 없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만 인간의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정신적인 충격은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있을지, 내가 언젠가 그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습니다. 환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만으로도 부러워하는 다른 병상의 눈들을 볼 때, 동물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홀로 도태되기 위해 무리를 떠나는 영상이 언뜻 스쳐가기도 합니다. 아직은 정신이 온전하고, 간단한 행동은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움직일 수 있게 기회를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병상에 오랜 기간 누워 있다면 아무래도 근육을 포함하여 신체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겠지만, 물리적인 돌봄만큼이나 ‘존엄을 지켜주는 태도’도 중요할 것입니다. 어디까지 도와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케어해야 할지는 환자의 상태와 감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를 한 명의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일일 것입니다.
나와의 싸움 : 무너지는 마음
가장 힘든 싸움은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피로가 누적되고, 불규칙한 생활과 외로움이 겹치면 감정이 폭발할 때가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통증을 호소하시는 환자를 보고 있자면, 조금 참지 못하나? 진통제를 맞아도 정말 고통이 느껴지나?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으실까? 이런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며 반복됩니다.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간병을 하면서도 맞는 것인지 혼란하기도 합니다. 간병에 몸과 마음, 비용 지출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형제자매 간에도 슬슬 각자의 목소리와 환경에 따라 상황이 바뀌게 되고 언제까지 이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부끄러워 자책하기도 합니다.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이 생활이 기약없이 길어진다면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될까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말기 환자를 간병하는 일은 단지 환자의 삶을 지켜주는 것과 함께 나와 가족의 관계, 내 삶, 내 감정까지 영향을 주고 있기에 환자가 질병과 싸우는 동안 바로 옆에서 나는 그에 따른 후속 환경과 싸우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환자와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내 시간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계시다면 당신이 감내하는 이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지금 우리가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그 순간이 따스한 온기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